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June 11, 1864 - 뮌헨(독일) — September 8, 1949 - 가르미슈(독일)
© Library of Congress
소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권위 있는 천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뮌헨 오페라 극장의 뛰어난 수석 호른 연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음악 교육을 시작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에 익숙했던 슈트라우스는 빠르게 독일 전역에서 존경받고 각광받는 위대한 지휘자가 되었다. 하인리히 폰 뷜로는 1885년 그를 자신의 후임으로 지명하여 마이닝겐 오케스트라와 이어 베를린 오페라를 지휘하게 했다. 뮌헨과 빈, 그리고 바이마르 궁정에서 맡았던 직책들과 초기 교향시들은 그의 첫 번째 대작인 살로메(1905)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화려한 관현악법과 관능적이며 화산처럼 격렬한 작곡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 작품은 1910년까지 영국에서 공연이 금지되었다.
리브레토를 쓴 유명한 오스트리아 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자주 작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들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그는 독일 전역에서 숭배받았다. 클로드 드뷔시는 그에게서 “우리 시대의 가장 권위 있는 천재 가운데 한 사람”을 보았으며, 1907년 로맹 롤랑은 그에게 이렇게 썼다. “[...] 당신의 힘은 제게 현대 유럽 음악 전체에서 가장 위대합니다.” 제3제국 아래에서 그는 침묵의 여인의 대본가인 유대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1935년 해임될 때까지 국가음악원(Reichsmusikammer) 총재직을 수락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마지막 낭만주의자
1915년까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그의 작품이 지닌 비범한 현대성으로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그는 더욱 관습적이고 고전적인 작품들로 종종 추종자들을 실망시켰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발자취를 따른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화려한 관현악적 폭을 지닌 강렬한 서정성으로 가득하다. 음악계가 현대성의 길을 걷고 있던 1949년, 마지막 낭만주의자인 그는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작곡하는 데 큰 열정을 쏟았다. 이를 입증하듯, 피에르 불레즈의 피아노 노타시옹 역시 바로 그해에 작곡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