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초 벨리니의 사진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

1801년 11월 3일 - 카타니아(이탈리아) — 1835년 9월 23일 - 퓌토(프랑스)

소개

19세기 초 카타니아에서 태어난 빈첸초 벨리니는 벨칸토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로는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1830), 몽유병의 여인(1831), 노르마(1831), 텐다의 베아트리체 (1833), 청교도(1835)가 있다.

벨리니의 어린 시절

빈첸초 벨리니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곱 남매 중 맏이였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아주 어린 나이에 발견되었으며,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18세가 되자 젊은 벨리니는 음악 교육을 더욱 완성하기 위해 나폴리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그는 당대의 또 다른 위대한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를 만났고, 처음으로 로시니의 오페라들을 접했다. 두 작곡가는 이후 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력과 이른 죽음

그의 첫 오페라 세리아인 비앙카와 페르난도는 1826년에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공연이 끝난 뒤 박수를 치는 관례를 깨뜨린 국왕의 열렬한 반응과, 공연을 관람한 도니체티의 지지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1827년부터 1831년까지 벨리니는 주로 밀라노를 비롯한 북이탈리아에서 살았다. 이 시기에 그는 네 편의 위대한 걸작, 해적, 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 몽유병의 여인, 노르마를 작곡하고 초연했다. 이러한 성공에 이어 벨리니는 런던으로, 다시 파리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34세의 나이로 이르게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빈첸초 벨리니의 유해는 이후 카타니아로 이장되어 현재 두오모 산타가타의 중심부에 안치되어 있다.

빈첸초 벨리니의 유산

벨리니의 예술은 베르디와 바그너뿐 아니라 쇼팽과 리스트 같은 작곡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많은 장소에는 벨리니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에는 1890년 노르마 공연으로 개관한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 테아트로 마시모 벨리니도 있다.

다시 발견할 동영상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