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바버의 사진
지휘자
작곡가
피아노
바리톤

새뮤얼 바버

1910년 3월 9일 - 웨스트 체스터(미국) — 1981년 1월 23일 - 뉴욕(미국)

소개

구스타프 말러는 한때 “작곡가가 자신이 말해야 할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음악으로 그것을 말하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어쩌면 이것이 바버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인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과 같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들에 계속해서 함께하고, 2001년 9월 11일의 비극을 기리는 추모식에서도 사용된 이유일 것이다. 새뮤얼 바버의 음악은 심오하며, 화성의 사용이 글로 쓰인 말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듯한 그의 작품에서 침묵이 중요한 역할을 할 여지를 허용함으로써 20세기 음악계의 공백을 채우는 듯하다.

1910년 봄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에서 태어난 새뮤얼 바버는 소년 시절부터 자신의 경력 전체를 계획해 두었다. 그는 7세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이후 평생을 자신의 예술에 바쳤다. 그는 어머니에게 “저를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작곡가가 될 운명입니다”라고 편지를 쓰기까지 했다. 그의 재능과 헌신은 어린 나이부터 빛을 발했고, 곧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편 바리톤 성악을 공부하고 로사리오 스칼레로에게 작곡을 배웠다. 여러 분야를 아우른 이 시기의 학업은 자신만의 음악 언어와 양식을 형성하기 시작한 그의 작곡적 발전에 결정적이었다. 특히 인간의 목소리에서 영감을 받은 새뮤얼 바버는 평생 독창과 성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을 썼다. 작곡가이자 아마추어 성악가였던 삼촌 시드니 호머의 지도 아래, 바버는 작곡가의 타고난 선율 감각과 말의 표현력을 지닌 본능이 교차하는 녹스빌: 1915년의 여름을 작곡했다.

문학 애호가였던 새뮤얼 바버는 프루스트의 내면 성찰적 기법과 토마스 만의 이야기 구성을 크게 존경했다. 바버는 성악 작품을 위해 자신의 개인 서재에서 신중하게 고른 텍스트를 활용했다. 녹스빌: 1915년의 여름에 사용한 동시대 시인 제임스 에이지의 시와, 첫 번째 바리톤 독창 작품에 사용한 영국 작가 매슈 아널드의 시가 그것이다.

40세를 앞두고 새뮤얼 바버는 작곡가이자 무대 연출가인 잔 카를로 메노티와 더욱 가까워졌다. 바버 자신이 평생의 동반자라고 표현한 메노티와의 작업 및 개인적 관계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바네사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수년에 걸쳐 바버가 음악을 쓰고 메노티가 대본을 집필한 바네사는 195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새뮤얼 바버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같은 세계적 수준의 앙상블, 레온타인 프라이스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같은 최고 수준의 예술가들과도 협업했다. 그러나 작곡가의 수많은 성공 뒤에는 숱한 좌절도 있었으며, 주로 작품에 대한 혹평 이후 우울증의 시기를 겪었다. 1966년 그는 뉴욕에 새로 건립된 링컨 센터의 개관을 위해 오페라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작곡하도록 위촉받았지만, 초연이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바버는 끝내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음악의 독보적인 인물

20세기 초 북미 음악은 실험과 혁신으로 특징지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철학은 바버의 음악을 동시대 작곡가들과 구별 짓는다. 결코 도발하려 하지 않고 언제나 설득하고자 했던 그의 음악은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길을 피한다. 새뮤얼 바버의 음악은 주로 조성 음악을 쓰는 그의 선호 때문에 동시대인들로부터 흔히 점잖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바버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경력 후반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medici.tv에서 작곡가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만나보세요.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여전히 작곡가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다. 처음에는 현악 사중주곡 Op. 11의 한 악장으로 쓰였으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요청으로 새뮤얼 바버는 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1938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조금의 허세도 없이 우울한 정서를 드러내며,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가 되기까지 음악 형식의 모든 장벽을 손쉽게 넘어서는 듯하다.

녹스빌: 1915년의 여름에서 새뮤얼 바버는 독창을 통해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과 같은, 아이의 시선으로 본 미국 남부의 여름 저녁에 대한 기억을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작곡가는 아이의 순수함과 성인의 삶에 대한 아이의 이해 사이에 놓인 대조를 완벽하게 그려 낸다.

그의 오페라 바네사는 바버 자신의 말에 따르면 푸치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과 유사한 양식으로, 위대한 유럽 오페라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의 개인적·직업적 동반자였던 잔 카를로 메노티가 쓴 대본은 고독, 기대, 그리고 두 번째 기회라는 듯한 환상처럼 전형적인 미국적 주제로 가득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미국 오페라 컬렉션에서 이 작품을 만나보세요!

새뮤얼 바버는 평생 후기 낭만주의 전통의 이상과 철학을 따르고자 했다. 그러나 1940년대에 걸쳐 그의 양식은 계속 발전하며 모더니즘의 요소를 받아들였고, 예를 들어 첼로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키르케고르의 기도에서 드러나듯 불협화음과 반음계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새롭게 찾은 양식은 훗날 음악을 서사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노력하는 존 애덤스와 제이크 헤기 같은 현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medici.tv의 새뮤얼 바버

새뮤얼 바버의 전 작품은 작곡가가 생존해 있던 시기에 거의 모두 녹음되었다. medici.tv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녹음을 살펴보면, 작곡가와 함께 녹음실에서 만들어진 녹음들(예를 들어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버전)과 지휘자들이 해석에 더 큰 자유를 부여한 최근 버전들(2019년 빈 필하모닉과 함께한 구스타보 두다멜의 연주)을 비교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medici.tv에서는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성공에 가려진 새뮤얼 바버의 덜 알려진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파가니니의 기교를 요구하고 러시아 레퍼토리의 서정성을 끌어오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또는 미국 대중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피아노를 위한 익스커션을 발견할 수 있다. 바버는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결합하고 이를 자신의 작곡에 녹여,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폭넓은 양식을 구축한 대가였다.

미국 클래식 음악을 위한 컬렉션에서는 새뮤얼 바버의 음악을 에런 코플런드와 레너드 번스타인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과 함께 소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바버의 음악을 다른 이들의 음악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가 20세기의 위대한 미국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새뮤얼 바버는 “나의 목표는 대도시의 작고 속물적인 음악 단체들만이 듣는 음악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음악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세기 작곡가들에게 기대되던 것에 맞서거나 굴복하려 하지 않고, ‘인간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바버는 결코 사람들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귀에 쉽게 들리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을 위해 음악을 썼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바네사 같은 작품을 통해 그는 20세기의 기존 학파들과는 거리가 먼 자신만의 음악적 목소리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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